아이는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사용한다. 어른에게는 이야기책이나 뉴스가 정보의 도구일지 모르지만, 아이에게는 상상 속 친구와의 대화, 인형과의 상황극, 엄마에게 들려주는 엉뚱한 이야기가 바로 그들의 세계를 정리하는 언어다.
이런 아이의 내면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놀이는 많지만, ‘스토리 큐브 놀이’처럼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하게 만드는 놀이는 흔하지 않다. 스토리 큐브는 주사위의 각 면에 그림이나 상징을 붙이고, 그것을 굴려 나온 그림을 연결해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이다. 만드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발휘되고, 굴리고 나서는 상상력이 활짝 열리며, 그 이야기를 말하는 순간 언어 표현력이 살아난다.
특히 5세 이후부터 초등 입학 전까지의 아이는 어휘와 문장을 급격히 확장하는 시기이므로, 이 시점에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구조는 아이의 전반적인 인지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 그저 하나의 주사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아이의 생각, 감정, 창의력이 그대로 녹아 있다. 엄마가 만들어준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벗어나 아이가 스스로 창조자가 되는 이 놀이를 통해, 아이는 조금 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세상을 구성하며, 상상의 세계를 키워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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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든 이야기 — 주사위 하나로 시작되는 상상 놀이 |
내가 만든 주사위가 내 이야기의 시작이 될 때
하나의 주사위, 여섯 개의 감정 단서
스토리 큐브 놀이의 시작은 ‘만들기’에서 출발한다. 아이는 종이 주사위 도안을 색칠하거나, 작은 상자에 좋아하는 그림을 붙이며 큐브를 완성한다. 각 면에는 태양, 나무, 구름, 자동차, 책, 인형 등 다양한 사물이나 감정이 그려진다.
이때 아이는 자신이 느낀 감정이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림을 고르게 된다. 예를 들어 해가 그려진 면을 붙이며 “이건 내가 기분 좋을 때 보는 햇빛이야”라고 말하는 식이다. 아이가 표현하는 그림은 곧 감정의 상징이 되고,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시각화해내는 과정이 시작된다.
이는 그 자체로 감정 이해와 언어 표현력 모두를 키우는 기반이 된다.
만들기와 언어가 연결되는 순간
아이들은 주사위를 만들면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로 옮기는 통로를 하나 더 갖게 된다. "이건 내가 싫어하는 소리야", "이건 내가 좋아하는 나무야"라고 말하면서 사물에 감정을 부여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연결한다.
이 작업은 아이가 평소에 느꼈던 감정을 표현하는 훌륭한 통로가 되고, 단순한 미술 활동을 넘어서 자기 세계를 언어로 정리하는 연습으로 이어진다. 주사위를 만들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떠올리는 아이는 말이 느린 아이라도 훨씬 편안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굴린 순간 펼쳐지는 상상의 무대
문장이 자라나는 순간
주사위를 굴리고 그림이 나오는 순간, 아이는 그 결과를 조합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해, 물고기, 무지개”가 나오면 아이는 “햇살이 밝은 날, 물고기가 무지개를 따라가요”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순서를 배우고, 문장의 구조를 익히며, 감정을 단어에 담는 훈련을 하게 된다. 이야기가 처음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자주 반복할수록 문장이 길어지고, 이야기의 전개가 뚜렷해지며, 아이의 말에는 감정과 의도가 뚜렷이 담기게 된다.
실패해도 괜찮은 구조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어떤 그림에서는 말이 막히기도 한다. 아이가 “이건 모르겠어”라고 할 때, 엄마는 “다음 주사위를 굴려볼까?”라고 부드럽게 이끌어주면 된다. 새로운 그림이 새로운 단서가 되고, 아이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요한 건 이야기의 논리적 완성보다 아이가 자신의 흐름을 따라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놀이 구조는 아이에게 도전과 유연함을 동시에 선물해준다.
엄마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말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말해주세요
아이의 이야기는 때때로 비현실적이고 엉뚱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아이의 감정이고 상상력이다. 엄마는 “그래서 어떻게 됐어?”, “정말 신기한 일이네”처럼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말로 반응해주면 된다.
평가하거나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야 아이는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반응은 아이의 언어 발달뿐 아니라 자존감을 세워주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함께 주사위를 굴리면 더 많은 감정이 보인다
처음부터 아이가 혼자 하기를 어려워한다면, 엄마가 함께 주사위를 굴리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엄마가 먼저 그림 하나를 보고 이야기를 짧게 시작하고, 아이가 그 다음 그림을 보고 이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공동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감정 단어를 엄마의 말 속에서 익히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연습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고, 그 자체가 감정 조절력과 표현력을 길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아이의 내면을 만나는 이야기 상자
주사위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는 단순한 놀잇감 그 이상이다. 아이는 그 속에 자신의 기억, 상상, 감정을 녹여내고,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한다.
매번 굴릴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고, 엄마는 그 이야기 속에서 아이가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다. 말수가 적은 아이도 그림이라는 단서를 통해 더 쉽게 입을 열 수 있고,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도 이야기 구조 속에서는 감정을 설명할 기회를 얻게 된다.
특히 반복해서 스토리 큐브 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는 과거의 감정을 떠올려 정리하고, 오늘의 감정을 다시 느끼며 표현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주사위가 작고 단순해 보여도, 그 안에서 자라는 것은 단어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이 작은 상자 놀이는 말보다 더 진한 공감의 시간이고,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만드는 정서적 세계다. 오늘, 종이 한 장과 색연필 몇 개만 있다면 시작할 수 있다. 아이는 주사위를 만들고, 굴리고, 이야기를 만들며 자신의 세상을 펼쳐갈 것이다. 엄마는 그 옆에서 조용히 듣고 반응하며,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는 따뜻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스토리 큐브 놀이가 가진 진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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