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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폭력 장면을 따라하는 아이, 훈육이 먼저일까? 감정이 먼저일까?
저도 그런 순간을 겪었습니다. 7살 아이가 TV에서 격투 장면을 본 뒤, 갑자기 팔꿈치로 밀치고 툭툭 때리는 동작을 따라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정말 당황스러웠고, 무엇보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어요. “지금 당장 제지해야 하는 걸까?”, “혹시 아이가 이런 행동을 자주 반복하면 안 좋은 습관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입을 떼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아이의 표정을 바라보니, 해맑게 웃고 있더라고요. 화를 낸 것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이 본 장면을 따라하며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그저 장면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느낀 감정이나 인상을 스스로 표현하고 있는 중이었구나.
이 글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반응이 필요할지, 훈육보다 먼저 다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아이는 폭력이 아닌 ‘힘’에 반응한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폭력 장면을 따라할 때, 아이가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건 아닌지 걱정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는 폭력 그 자체보다도 그 장면이 전달하는 힘, 자신감, 주도권에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5~7세 아이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아직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TV 속 영웅이 악당을 무찌르는 장면, 강한 캐릭터가 위협을 물리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멋진 것’, ‘되고 싶은 것’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종종 자신을 영웅처럼 상상하면서 행동하곤 하지요.
따라서 아이가 폭력 장면을 따라한다고 해서 바로 “하지 마!”라고 제지하기보다는, 그 행동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장면이 재미있었어?”
“이렇게 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
“어떤 부분이 멋져 보였어?”
이런 질문은 아이의 내면에 있는 감정과 생각을 꺼내는 데 도움을 줍니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점점 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설명하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
감정 연결 없이 훈육만 하면, 아이는 감정을 숨깁니다
아이의 행동을 단순히 “때리면 안 돼”, “그런 건 못하게 해”라고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행동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반드시 어떤 감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그 장면이 단순히 ‘재밌어서’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억울한 감정이나 불안, 자신감 부족 같은 감정이 담겨 있을 수도 있어요.
샐리님의 사례처럼, TV 속 캐릭터를 따라하며 웃고 있는 아이는 어쩌면 **“나도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낮에 겪었던 불쾌한 상황이나 긴장을 해소하고 싶어서, 그런 장면을 빌려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훈육이 먼저 나가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 표현이 틀렸다고 느끼고, 감정을 숨기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어떤 감정을 느껴도 표현하지 않게 될 수 있어요. 그런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법을 잊고, 감정을 억누르는 방향으로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감정 + 행동 + 결과를 연결하는 대화법
그렇다면 폭력 장면을 따라하는 행동이 나타났을 때, 부모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음 세 가지를 함께 넣어주는 것입니다.
-
감정을 읽어주기
→ “멋져 보이고 싶었구나”
→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야?” -
행동에 대한 설명하기
→ “근데 팔꿈치로 밀치면 친구가 다칠 수 있어”
→ “그건 진짜 상황에서는 위험한 행동이야” -
다른 표현 제시하기
→ “멋진 마음은 좋은데, 말로 표현해보자”
→ “그럴 땐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씩씩해!’”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면 아이는 단순히 제지를 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더 나은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TV는 막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석하는 도구
TV를 무조건 끄거나 금지하는 것도 해답은 아닙니다. 오히려 TV나 유튜브의 영향을 함께 이야기하고, 부모와 함께 해석해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TV 속 장면을 함께 보고 나서 “어떤 장면이 재밌었어?”, “저 사람은 왜 화가 났을까?” 같은 질문을 해보면, 아이는 장면 속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이것은 감정 인식 능력과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훈련이 되기도 하지요.
행동보다 감정을 먼저 다룰 때, 아이는 안전하게 자랍니다
7살 아이가 TV 속 폭력 장면을 따라했을 때 느꼈던 샐리님의 당황스러움, 그것은 모든 부모가 겪는 일입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아이의 행동만 바라보기보다,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욕구를 읽는 것입니다.
그날 저도 참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눈빛과 표정을 바라보는 순간, 이 아이가 단지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아이의 행동을 감정으로 번역해보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게 되었어요.
폭력 장면은 흘러가지만, 아이의 마음은 거기서 출발합니다. 행동보다 감정을 먼저 다룰 수 있는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 그게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양육의 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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