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매일 같은 티셔츠만 입으려고 할까?”, “분명히 다른 길이 더 빠른데 왜 늘 저쪽 골목으로 가자고 할까?”, “같은 이야기책을 하루에 세 번도 넘게 읽어달라는 건 무슨 심리일까?”
부모는 아이의 반복적인 행동을 보며 종종 당황한다. 때로는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릴까?” 싶고, 심하면 “혹시 발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5세 전후의 아이가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단순히 고집 때문이 아니다. 이 시기 아이는 세상에 대한 불확실성과 낯섦 속에서 ‘예측 가능한 반복’이라는 안전지대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반복은 안정이며, 루틴은 자율성의 출발이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5세 아이가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는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것이 ‘틀에 갇힌 행동’이 아닌 ‘정서적 자율 조절’의 일환이라는 점을 짚어보려 한다. 반복을 무조건 고치려 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는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함께 살펴보자.
아이의 반복 행동, 왜 나타나는 걸까?
1-1. 불확실한 세상 속, 루틴은 ‘예측 가능성’을 준다
어른에게는 사소한 일상도 아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매일 달라지는 사람, 장소, 소리, 냄새 등은 아이에게 때로 위협적일 수 있다. 이때 아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패턴’을 고수하려 한다. 매일 똑같은 순서로 옷을 입고, 같은 시간에 같은 노래를 듣고, 똑같은 책을 반복해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반복은 아이가 세상을 통제 가능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대로 하면 괜찮아”, “이 순서대로 하면 일이 잘 풀려”라는 신념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부모가 이를 단순 고집이나 변덕으로 치부하면, 아이는 더 불안해지고 반복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1-2. 반복 행동은 자기조절 능력의 초기 단계
5세 전후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반복 행동은 감정을 다루기 위한 하나의 자기위안 메커니즘이다. 같은 장난감을 같은 위치에 놓아두거나, 특정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마음을 다독이고 일상을 정리한다.
이는 어른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커피를 마시거나 같은 음악을 듣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에게는 반복이 바로 심리적 균형을 맞추는 방법인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반복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1. 무조건 고치려 하지 말고 ‘왜’를 먼저 물어보기
부모는 아이가 똑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특정 행동을 고수할 때 그저 “그만해”, “왜 또 그래”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반응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지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때 “왜 그걸 그렇게 하고 싶어?”라고 차분히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이유를 설명하는 기회를 얻는다.
물론 모든 반복 행동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불안·지루함·애착 요구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아이의 언어 능력과 감정 표현력이 완성되지 않은 만큼, 반복 행동이 곧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2-2. 패턴을 인정하되, 조금씩 유연성을 더해주기
루틴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부모는 아이의 반복 행동을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선택지를 섞어주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매일 같은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에게 “오늘은 이 책 읽고 나서 네가 고른 책도 읽자”라고 제안하는 방식이다. 또는 늘 먹던 접시가 없을 때 “오늘은 엄마가 골라볼까?”라고 하며 아이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좋다.
이런 방식은 아이가 느끼는 패턴의 안정감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반복 행동이 위험 신호일 때는 언제일까?
3-1. 일상 기능을 방해하는 경우
대부분의 반복 행동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진다. 하지만 반복 행동이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방해할 정도로 강해지거나, 아이의 감정 상태에 과도한 영향을 주는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특정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극도로 불안해하거나, 하루 생활이 반복 행동 중심으로 돌아가고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을 피한다면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다.
3-2. 반복 행동 이면의 감정이 고착화될 때
반복 행동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지속적인 불안·분노·우울감과 연결되어 있다면 반드시 감정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아이가 반복을 통해 감정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반복이 감정 표현의 차단 수단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 행동은 아이의 안정감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5세 아이의 반복 행동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로 받아들이는 아이가, 스스로 일상을 정리하고 감정을 조절하려는 방법이다. 반복은 곧 안정감의 표현이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조율하려는 의지다.
부모는 아이가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동일한 순서를 고수한다고 해서 무조건 걱정하거나 억누르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심리적 신호를 읽고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반복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 아이는, 점차 유연한 사고와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워갈 수 있다.
결국 아이는 자신의 속도로 자란다. 반복은 그 속도를 조절하고 유지하는 나름의 장치일 수 있다. 우리는 그 장치를 부수기보다, 함께 조율하며 성장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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